[에세르 자치령] 에세르 자치령 ( 40 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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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세르 자치령 (Eserre Autonomy) 또는 키르수스 령 에세르 (Eserre of Kircusses) 는 헤스페로스벨트 중앙에 위치한 전제군주제 국가이자 키르수스 소속 자치령이다. 1663년 게파르토 인민단결 공화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때, 키르수스 제국이 이를 지원해주었고 게파르토 인민단결 공화국에서는 그에 대한 대가로 게파르토의 영토중 일부를 키르수스의 산하 국가로 독립시켜 만들어진 국가이다. 북쪽으로는 그란치프 제국, 동으로는 공화국연맹, 서로는 키르수스 제국, 남으로는 게파르토 인민단결 공화국과 접경해 있다. 대형 공업단지나 특별한 기술이 없어 기호품 산업을 주력으로 삼고있다. 9개의 구와, 32개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2.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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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국호
공식 명칭은 에세르 자치령 (Eserre Autonomy) 이지만 지역에 따라 에쎄르 (Essere), 혹은 에세르 (Esser) 이라고 표기하거나 읽는 경우도 있다.
공문서 작성이나 공식석상에서는 에세르 자치령 (Eserre Autonomy)를 권장한다. 하지만 아직 국호에 대한 명칭 논란이 지속되고있다.
2.2.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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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명은 장미삼색기(薔薇三色旗) 라고 칭하며 키르수스어로 "Rose Dreifarbige Flagge" (장미 삼색 기) 라고 표기한다.
3. 역사
게파르토 제국의 해넘이 정변 이후 키르수스는 게파르토에게 전쟁보상금 문제로 거래를 시도했다. 게파르토는 영토 북부의 땅을 나눠 키르수스에게 할양했으며 키르수스가 이 영토를 독립시켰고 1665년, 그 곳에 에세르 자치령이 세워졌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인구는 게파르토로 빠져나갔고 3800만의 인구를 간신히 유지했다.
에세르 자치령이 건국되고 키르수스는 자치령을 통치할 총리 자리를 맡을 사람을 모색했다. 그중 2명의 후보가 거론되었는데 "바토리 다르하스"와 "페트르 하벨"이다.
페트르 하벨은 과거 키르수스-그란치프 전쟁때 키르수스 국민자유당 소속으로 여러 정치적 활동과 연설을 펼쳐 키르수스의 승리에 기여했다. 업무능력과 언변, 모든 분야에서 뛰어났던 페트르 하벨은 키르수스의 정치인들에게 눈에 띄어 에세르 자치령의 총리 후보로 올랐다.
바토리 다르하스는 페트르 하벨과 다르게 뛰어난 능력이나 언변은 없었으나, 특유의 인상과 친화력으로 키르수스 정치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중이었다. 하지만 키르수스 국민자유당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지 못했던 그를 안타깝게 본 고위 인사들이 있었고, 그들의 추천으로 에세르 자치령의 총리 후보로 오르게 되었다.
키르수스 국민자유당에서 투표를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바토리 다르하스가 총리 자리를 맡게 되었다. 이내 바토리 다르하스를 중심으로 여러 정부요인이 구성되고 마침내 에세르 자치령의 내각이 편성되어 빠르게 자치령을 안정화시켰다.
그러나 투표에서 패배한 페트르 하벨은 자신이 바토리 다르하스에게 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1666년 에세르 자치령의 남쪽에 위치한 도시인 아케인드리아에서 자신의 지지세력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키다가 자치령 지상타격대에게 진압당했다. 이후 페트르 하벨은 도망쳤고 그대로 행방이 묘연해졌다.
이후 1672년 키르수스가 코르보날을 침공했고 에세르 자치령이 키르수스에 원정군을 파병하며 대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4. 지리
5. 행정구역

